그리스 1-2일차 아테네 야외 유적지의 날 - 아크로폴리스와 제우스 신전, 수니온 포세이돈 신전
여기 저기 놀러 다닌 이야기/해외 2020. 4. 29. 16:18 |
2019년 2월 중순 여행 기록.
추운 러시아를 떠나 상대적으로 따뜻한 그리스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따뜻함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고. 우리나라 봄 날씨 정도.
아테네 공항버스X95번을 타러 게이트를 따라 쭉 걸어갔다. 표지판보고 버스그림 따라서 정말 끝까지 가야했다. 작은 매표소에서 6유로 주고 티켓을 구매했다. 여긴 현금만 가능하다고 한다. 버스는 20분 정도에 한대씩 오는 듯 했다. 나는 신타그마에서 숙소를 걸어갈 계획이었다.
버스가 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탔다. 종이티켓을 교통카드처럼 태그하면 되는데, 무슨 초록색 불빛이 나오면 된 것. 버스가 길게 2개 합친 것 정도의 길이였다. 짐 두는 공간 있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이 이미 놓아서 내가 놓을 곳이 애매해서 그냥 마침 자리 난 김에 내가 잡고 갔다. 1시간정도 가면 신타그마역에 도착한다. 다른 구간에서는 금방 가다가 시내에서는 차가 좀 막힌 듯.
일단 아테네 공항에서 내렸을 때 부터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을 시작했다. 캐리어 들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가방 지갑 핸드폰 잘 체크하고 있었다. 신타그마에서 내려서 일부러 너무 초반부터 헤매는 티 내면 안될까봐 대충 방향만 보고 일단 조금 한산한 곳 까지 걸어가는데 반대방향이었던 것이다. 많이 돌아간 건 아니라 다시 방향 잘 보고 길 외워서 중간 중간 체크하며 숙소까지 잘 도착했다. 캐리어는 무겁고 길은 좁고 울퉁불퉁해서 힘들었다. 짐 없으면 도보 15분정도 거리?
숙소는 아테네 베드박스 호스텔. 여기는 건물 전체가 호스텔이었고 큰길에서 조금 들어오는 골목. 주변이 을지로 느낌이었다. 수도나 배관 관련 자재 판매하는 가게들 쭉 있는 사이에 있었다. 딱히 위험한 건 없고 그냥 조용했다. 여기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개인 커튼과 콘센트가 갖춰져있었다. 방문은 카드키로 열어야해서 방을 나갈 때 잊지 않고 꼭 가져다녀야했다. 개인 사물함도 사용가능한데 거기에 쓸 자물쇠도 대여해주었다. 그 사물함은 꽤 커서 어지간한 크기의 캐리어를 넣고도 남았다. 그래서 혹시몰라 가져간 자전거용 체인 자물쇠는 쓸 일이 없었다. 와이파이도 잘 되고. 다들 활동 시작 시간대가 달라서 딱히 번잡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다 너무 친절했고, 여기는 러시아와 달리 서로 인사도 좀 하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많았다. 내 위층 침대에 중국인이 있었는데 대화하다가 보니 독일에서 넘어오면서 여권을 잃어버려서 자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가 잃어버린 건지 훔쳐간건지도 잘 모르겠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나름 대단하다고 느꼈다. 중국에서 여행온건지 아님 독일에서 유학하다 놀러온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의문을 느낀게 한국은 대사관가면 여권 빠르게 만들어 준다고 들었는데 중국은 다른 건가?
그렇게 서로 인사도 하는 분위기라서 러시아 때처럼 부담스러운 조용함이 아니라 약간의 소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인지 잠도 더 잘잤다.
일단 체크인하고 바로 캐리어를 사러 나갔다.
어디서 파는지 잘 모르겠지만 상점 많은 곳으로 가면 되겠지 싶어서 모나스트라키 쪽으로 갔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정도 거리인 상점가인데, 그 광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방들 파는 곳을 발견. 적당한 크기와 가격대라서 바로 샀다. 기존에 가지고 온 것보다 약간 컸고 이번엔 지퍼형이니까 그렇게 어이 없이 잠금장치가 빠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택에는 65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50유로로 할인해준다고 너무 좋은 가격이라고 하는데, 뭐 원래 50유로 인 것 같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굳이 더 깎을 마음은 없었고 적당한 가격인 것 같아서. 사서 일단 기분이 좋았고 짐을 새로 싹 정리 한 뒤 아테네를 구경하러 나섰다.
아테네 골목 사이
수블라키
그리스식 샐러드와 맥주
이미 오후3시 반이 넘었고, 겨울 비수기 시즌이라 유적지나 박물관들이 2시30분~4시30분 사이에 많이 닫는다고 해서 이날은 그냥 거리 산책하고 내일 갈 곳들 위치 탐색도 하고 저녁이나 맛있게 먹자라고 생각했다.
아테네는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객관적인 숫자라기 보다는 비율적으로. 길이 대체로 좁고 도시 자체도 작은데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내가 보기에도 백인관광객이다!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여기도 아시아인이나 흑인은 별로 없었다. 러시아에 있다 가서 그런지 아주 활기차보였다. 걷다가 보니 내일 갈 유적지들이 알아서 등장해주어 자연스레 가는 길도 익혔다. 도시가 작고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어서 길 잃더라도 적당히 가다보면 다시 길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건물 곳곳에 그래피티가 넘쳐 났다. 아테네는 좁고 고대 유적들도 많지만 사이사이에 낙서들과 식물들이 가득한 거리가 많았다. 흑인 팔찌 강매나 꽃강매는 주요 유적지 2-3군데 앞 정도에서만 보았고 다른 곳에서는 못보았다. 길 다니면서 치안 수준도 보는데 딱히 내가 당하지도 남이 당하는 것도 못 보았다. 해지고 나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별로 안 위험했다. 밤 아주 늦게는 안다니긴 했지만 우범지대나 그런 곳 아니면 한 10시쯤까진 괜찮은 것 같았다.
좀 걷다가 6시쯤 아크로폴리스 있는 길 옆 쪽에 있는 식당에서 수블라키랑 맥주 한잔 했다. 수블라키는 가격대비 너무 조그맣게 나와서 좀 그랬는데 그냥 맛있긴 해서 먹었다. 12유로에 1줄 이라니. 그거 먹고 조금 부족해서 그릭 샐러드 6.5유로 정도에 맥주 한 잔 더 마셨다. 맥주는 처음엔 알파 1병 마시고 그 다음엔 생맥주를 추천해주길래 마셨는데 생맥주가 좀 더 맛있었다. 약간 단 향 나는 맥주였다. 내가 좀 천천히 먹어서 오래 있다보니 테이블 직원이랑 대화를 좀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에피소드가 시작되었다.
유럽 쪽이 다 그렇듯 서빙직원들이 말을 많이 거는 데 처음에 이름 뭐냐 어디서 왔냐 혼자왔냐 등등 묻고 맛있냐고 물어보고는 정도 였다. 샐러드 추가 주문 했더니 무슨 보드카 같은 걸 주면서 그리스 스피릿이라고 했다. 향이 독특한게 맛있었다. 아마 그리스 보드카로 우조인 것 같았다. 도수 셀거 같아서 조금 씩 마시고 그렇게 이야기 조금 하다가 막판에 8시다되갈 때쯤 자기 9시에 퇴근하는데 같이 술마시자고 했다. 거절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하긴 했다. 그래서 나 내일 일찍 일어나야해서 안될거 같다 하고 조금 이따 계산하고 갔다. 타지에서 무슨일 있을 줄 알고 같이 안마실 생각이기도 했지만 나이도 나보다 최소한 열살은 많아 보였는데 내가 왜 굳이? 그리고 이미 혼자서 노느게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사람과 대화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뭐 에피소드 하나 생겼네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이럴때는 러시아가 생각났다. 다들 쓸데없는 말 안 걸어서 편했는데.
밤의 아크로 폴리스
숙소 근처. 을지로 골목 느낌.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서 얼른 쉬었다.
비수기라서 유적들이 일찍 닫으니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이 동네는 유적이나 미술관이 아침 8시 30분부터 여는 곳이 많아서 그 때 가려면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다음 날 무사히 일어나 야외 유적지의 날을 시작했다.
아크로폴리스부터 시작해서 고대 아고라, 제우스신전, 자피온 근처의 국립정원을 갔다가 리케이온갔다가 아테네 묘지가고 신타그마에서 버스타고 수니온을 가서 석양을 보고 오는 빡빡한 스케쥴이었다. 분명 이 여행을 시작할 때 여유롭게 다니려고 했는데 사람 욕심이 자꾸 이것도 가고 저것도 가야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 다음날은 비가 온다고 하길래 이날 야외 스케쥴은 다 끝내야 했다.
계획대로 8시 30분 정도에 아크로폴리스에 도착, 통합권 30유로를 구매했다. 위치는 지하철 아크로폴리스 역 앞이고 맞은 편에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있다. 일단 그리스로 넘어와서 기뻤던 점 중에 하나는 영어가 잘 통한다는 것. 새삼 영어의 소중함을 느꼈다. 영어를 써도 다들 친절하게 영어로 대답해 준다는게 이렇게 감격적일 줄이야. 물론 그리스도 그렇고 다른 유럽도 발음은 그 나라 식으로 하기 때문에 약간 신경써서 듣긴 해야한다. 말하는 나도 신경써야 겠지만.
아크로폴리스
아크로 폴리스는 작은 산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중간 중간 계속 유적지가 나오는 동선이고 맨 꼭대기에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메인 유적들이 있다. 신전 말고도 다른 유적들이 많이 있어서 흥미롭고 신화의 나라 라는 명성에 걸맞는 곳이었다. 아침부터 신난 상태가 되어 발 아픈 것도 잊은 채 열심히 걷는 원동력이 되었다. 생각보다 유적들은 다 거대했고 볼 것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 중에 그냥 돌덩어리들 몇개 있다는 식으로 표현된 것도 보았는데,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유적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음악당, 극장, 신전, 자연 등이 적당히 어우러지며 적당히 파괴된 상태였다. 아크로폴리스가 원래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모습인 걸까 하고 상상 해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몇천년 전에 어떻게 지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 근처에서 보는 아테네 경치는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시원한 풍경이었다. 굳이 따로 더 높은 곳에서 경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복원 작업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인지 어딜 가도 복원 중인 흔적이 있었다. 기차 철길 같은 게 있던데 복원 공사를 위해 설치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만 포럼
그렇게 올라온 곳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다보면 후문이 나오고 그곳에서도 입장하는 단체 관람객들이 많았다. 거기도 티켓구매는 가능했다. 그렇게 내려와서 길을 따라 쭉 걷다보면 로만 포럼이 나온다. 여기도 통합권으로 입장 가능한 곳. 여기 주변에 흑인 팔찌강매가 몇몇 있는데 그냥 안산다고 하고 지나가거나 멀리서도 보이니까 그 사람들 하고 조금 떨어져서 걷기만 하면 별 문제 없었다. 아침 일찍이라서 내가 갔을 때는 별로 없기도 했고. 여기는 사실 밖에서도 다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여긴 형체가 제대로 있는 건 별로 없어서 인기있는 장소는 아닌 듯 했다. 그래도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았다. 시각에 따라 폐허이냐 유적의 잔해이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여기서 작은 2차 에피소드.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유적이었는데 내가 들어오고 나서 어떤 동아시아계 남자가 들어왔다. 그러다가 자꾸 나를 주시하더니 중국어로 뭐라 하는데 중국인이냐고 물어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일본어로 이이에 라고 말해버렸다. 그냥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랬더니 가더니 잠시 후 다시 와서는 영어로 일본인이냐 묻길래 거짓말하긴 좀 그래서 아니 남한에서 왔어 라고 하며 대화가 시작. 난 혼자 다니는게 지금 좋은데 이 사람이랑 대화하다가는 동선도 겹쳐서 왠지 같이 다녀야 할 것 같은 위기감에 철벽을 시전했다. 혼자 왔어? 응 / 여기 며칠 있어? 4일 대략 이런 식으로 단답하고 별로 안쳐다 보고 했더니 적당히 멀어졌다. 아 다행이다 ! 하는데 비슷하게 그곳을 나와서 고대 아고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효율적인 동선이 정해져있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일부러 길을 돌아서 갔다. 다행히도 고대아고라는 넓어서 거기서는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고대 아고라
고대 아고라는 과거에는 광장 겸 시장이었다는데, 현재는 좀 거대한 정원같은 느낌이었다. 곳곳에 유적들 신전 있고 식물이 아주 많았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니면서 식물들을 관찰했다. 나는 여행다니면서 평소에 실제로 많이 보지 못한, 그 나라의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예술품과도 그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비교적 따뜻한 남유럽 나무들의 특징적인 생김새가 있는게 그건 회화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어서 '이 사람들의 나무 표현이 그렇게 생긴 나무를 보았기 때문이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듯이. 그리고 한적하고 입장료도 있는 곳이라서 사람들 안지나 다닐 때, 삼각대 대신 의자나 돌 위에 물병으로 핸드폰 고정시키고 전신셀카도 찍었다. 처음에는 각도나 포즈 잡는게 조금 어색했는데 몇번 연습해서 익숙해지니 할 만했다. 누가 소매치기일지 몰라 사진찍어달라고 묻기도 좀 조심스러워서 많이 부탁하지 않았기에 나름 몇 안되는 소중한 전신사진이었다. 누가 보면 혼자서 뭐하는 건가 싶겠지만 또 볼 사람들 아니니까. 하다보니 그냥 소매치기 없을 것 같은 공간이면 종종 찍곤 했다. 나름 그렇게 혼자 노는 재미를 하나 더 찾게 되었다.
아고라 안에 박물관도 있는데 힘들어서 거긴 안갔다. 박물관은 내일 다른 곳들도 갈거니까. 그리고 아고라 근처에 기찻길같은 것도 있고 카페나 식당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빡빡한 일정이므로 얼른 걸어서 제우스신전으로 향했다.
제우스 신전
제우스신전은 신타그마 광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있는데 입구는 큰길에서 조금 뒤편으로 가야한다. 자피온 맞은 편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스 유적 대부분이 그렇 듯이 신전의 형태는 온전하지 않다. 많이 부서져 있고 복원 중인 듯 하다. 그렇지만 이 신전이 과거에 어떤 규모이고 형태였는지 유추가 가능하기에 그걸 상상하면서 보았다. 날씨가 좋아서 신전 주변 잔디에 사람들이 앉아서 휴식도 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였다. 나도 앉아서 조금 쉬고.
신전들은 다 멀리서 보았을 때와 가까이서 보았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특히 가까이서 보면 더 거대함이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시켜서 찍은 자피온, 그리고 그 옆 국립정원
이제 다음 방문지인 국립정원을 향해 갔다. 바로 옆이라 금방 가는 곳인데 여기서 또 에피소드가 생겨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제우스 신전에서 나와 정원 방향으로 조금 걸었을 때였다. 지도를 다시 한 번 확인 하고 잠깐 서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그리스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못알아 듣는 표정을 지으니 영어로 '아~너 여기 안사는 구나 나 이 미술관 가려고 하는데 어딘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긴 했지만 굳이 나에게 왜 길을 묻지? 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있고해서 길 물어보기 쉬웠나 하고 말았다. 내가 평소에도 한국에서 길 물어보는 외국인들을 먼 곳이 아니면 데려다 주기도 해서 여기서도 오지랖이 발동되고 말았다. 그 할아버지가 구글맵을 보고 있긴 했는데 그리스어 버젼이라서 내가 이거 영어로는 어떻게 읽는 곳이냐고 물었다. 지금 제우스신전 앞이니까 방향 찾아주겠다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뭐라뭐라 하는데 대충 '나는 그리스어 할 줄 아는데 너는 못하니까 ..위치 찾기 힘들 듯'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저기 밝은 곳으로 가서 보자'며 자연스레 이동하기 시작했다. 있던 곳이 그늘이라서 그런 줄 알고 잠시 함께 가는데 생각보다 계속 가서 자피온까지 갔다. 걷는 거리로는 얼마 안되고 외진길도 아니고 그냥 뭐지? 였다. 가면서 자기 신상이야기하고 내 신상도 물어보았다.
대략 ' 너 한국에서 왔다고? 나 부산에 가봤어. 난 건축교수인데 교환교수로 부산에 한달 갔었어. 넌 학생이야? 아 졸업했다고. 그럼 전공이 뭐야? 아 그게 어떤 거야? 아 그렇구나. 지금 저기 앞에 있는 자피온은 건축적으로 아주 중요한 거야. 아크로폴리스 갔다왔어? 건축 양식에 도리악, 이오니악, 코린티안 이렇게 있어, 자 따라해봐, 잘했어, 각각의 특징은 이러저러해, 자 네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아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줄게. 자 이제 알겠지? 그럼 지금 저 기둥은 무슨 양식같아? 그래 맞았어. 자 저건 아주 중요한 거야 사진 찍어, 저것도 사진찍고, 자 그래서 저건 무슨 양식이라고? 그래 맞아 잘 외워놔. 오늘은 자피온 안쪽으론 들어갈 수 없다네 그럼 이제 나가자.' 라며 폭풍 건축 공부를 당했다.
사실 미리 그리스 오기 전에 검색해서 세가지 건축양식 알고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가 내가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설명을 시작하는 바람에 뭔가 안다고 말할 틈이 없었다. 와... 교수는 어느나라든 다들 그렇게 가르치려고 드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일단락 되나 싶었더니 2차 대화 시작.
'여기 아테네에는 며칠 있어? 오 충분한 시간이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갔어? 음 그리고 아주 중요한 박물관이 또 있어,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자 따라해봐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그래 잊지 말도록해. 그래 그럼 오늘은 또 어디가? 음? 수니온? 거긴 이미 너무 늦었어 아침에 가는게 좋아 내일가. 아냐 비는 내일 오후에 온다고 해서 아침은 괜찮아. 흐음 오후에 거기 가는 건 정말 별로인데. 거기 말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어, 잠시 기다려봐,(구글 지도로 알려줌) Marina Flisvos 여기는 차로 10분 거리인데 내가 좋아하는 카페나 맛집이 많아, 특히 스시 맛집이 있다고, 스시!'
아.....정말 귀찮았다. 나의 오지랖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어딜 가든 말든!! 간섭 받기 싫어서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훈수 당하고 좀 피곤해졌다. 저 마리나바다는 항구인데 나는 항구 관심없다고. 돌 언덕 위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 보러 갈거라고...
이제 3차 대화
'그럼 아테네 갔다가는 어디가? 오 나 원래 로마에 살아. 로마에는 이런 곳들은 꼭 가야해. 아 커피 한잔 하러 갈래?'
네? 커피라니요. 저는 지금 바쁜데요... 이제 본격적 당황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의 대답으로 대화 시작
'아니 난 지금 여기저기 가야하는데 시간이 안될 것 같아'
'음 그럼 조금 이따 2시 쯤 만날래?'
'아니 그건 좀 그런데...내가 왜 혼자 다니겠어. 누구랑 같이 다니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같이 커피 마시자. 아니면 이따가 같이 아까 말한 마리나에 갈 수도 있어. 스시 먹을 수도 있고.'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아냐 그럼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나중에 메세지 보내줘, 니 이름은 뭐야? 난 로베르토야. 핸드폰 번호 알려줘.'
이쯤 되니 어쩔 수 없이 알려주었고 나도 할아버지의 번호를 알게 되었다. 전화되는지 테스트해보는 철저함. 아니 그런데 내가 왜 그리스에서 스시를 먹냐고요. 나는 3시반에는 수니온 가는 버스를 타야하므로 당연히 남는 시간 같은 건 없고 굳이 자꾸 날 가르치려고 드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더 나누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다행히 그날은 연락이 오지 않았고 다음날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리스 많이 와 본 것 같던데 길을 물어본 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에서 이탈리아 할아버지 체험.
이 때 좀 스트레스 받아서 지쳐있다보니 정원은 그냥 슥슥 보았다. 나름 연못에 거북이들도 키우고 있었는데 비둘기가 너무 많아서 이게 비둘기 사육장인지 거북이 집인지 헷갈릴 수준이었다. 정원 자체는 좋았다. 다양한 식물들도 있고 쉬기 좋은 공간인 것 같았다.
리케이온 가는 길과 리케이온에 있는 식물
리케이온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으로 향했다. 가다가 올림픽경기장을 지나가게 되어 보았으나 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경기장을 지나 목적지로 가는 길은 관광지를 조금 벗어난 곳이라 좀 더 일반적인 아테네 시민들이 사는 공간을 볼 수 있었다. 상가보다는 가정집이 위주이며 큰길에는 낮은 아파트들이 많고 보도블럭도 평범한 것들이 있었다. 각 집 테라스에서는 많은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조용하고 거주민들이 많이 다니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걷는 재미가 있었다.
리케이온은 작은 유적이고 관람객도 몇명 없었다. 동시에 많아도 10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형체가 거의 안남은 유적이다 보니 인기가 없는 것 같았다. 여기야 말로 거의 폐허였지만 한적한 분위기와 여기 얽힌 역사를 간략히 알게 된 것은 좋았다. 여기서 조금 쉬면서 충전도 하고 또 혼자 사진찍기 놀이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아테네 묘지
오늘 아테네의 마지막 코스인 아테네 묘지로 갔다. 아테네는 진짜 공사하는 곳이 많았는데 각종 유적들은 워낙 오랜기간 공사하고 있는데 이 묘지는 입구를 통째로 공사중이라 검은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여기 맞나? 싶었다. 영문명으로 First Cemetery of Athens여서 나는 옛날 무덤들 있는 줄 알았는데 현재에도 계속 장례가 치뤄지는 무덤들이었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관을 보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묘비보니 가족묘 인 것이 대부분이고, 거기에 다른 가족들의 생몰년은 보면 최근 것들도 종종 있었다. 내가 굳이 묘지에 간 것은 다른 나라의 장례문화는 어떤가 궁금해서 였다. 장례 절차가 궁금하다기 보다는 정확히는 무덤의 형태가 궁금했다. 대부분 가족 묘를 만들고 비석과 조각상 등을 세워 무덤을 만들었다. 뭔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지하실같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시신이나 뼈를 보관하는 걸까? 그리고 무덤들의 형태자체가 예술이기도 해서 보러 갔고. 예전에 파리에서도 묘지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 형태의 예술성과 호기심 등등. 여기는 완전히 평지는 아니고 조금 언덕도 있었다. 가서 소란스럽게 군다거나 사진을 너무찍고 다니는 건 좀 그럴 것 같아서 조용히 가서 슥 보고 기억을 위한 사진만 조금 찍었다.
수니온 버스 정류소와 근처에서 마신 커피
약 6-7시간 동안 열심히 돌아 다닌 것은 3시 30분에 수니온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였다. 일단 버스는 거의 2시간 가량 쭉 가는 거라서 그 동안 충분히 휴식시간이 있으니 좋기도 하고. 소매치기가 워낙 심하다고 해서,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반 버스나 지하철을 전혀 타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걷다보니 휴식할 시간이 없고 힘들었는데 버스 쭉 타고 가면서 휴식하고 자연히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좋았다.
버스 타는 곳은 구글맵에 bus stop to sounion 이라고 검색해서 나온 곳이라고 해서 맞게 찾아갔으나 수니온행 버스 시간표가 없었다. 그 버스 정류장 표시는 있었는데. 그래서 혹시나 시간이 바뀌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이왕 온 거 기다려보고 안되면 포기하자는 마음이었다. 일단 시간이 좀 남아있었기에 쉴 겸 근처 카페로 가서 토스트랑 커피를 주문했다. 참고로 그 근처는 앉아서 먹을 만한 가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내가 간 곳은 주로 커피를 사서 가져가고 앉는 곳은 간단하게 있었다. 뜨거운 커피 먹기 싫어서 네스카페 프라페를 주문했다. 사진에서 거품 많은 커피 본 적이 있어 궁금했는데 마침 잘되었다! 하고 마셔보았다. 거품 부드럽고 커피도 괜찮았다. 에스프레소로 거품 낸 거 같은 맛.
수니온 행 버스에서
다행히 버스시간표는 그대로였고 3시 40분에 버스가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타있진 않았고 근교에 사는 주민들이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 있었고, 신타그마에서 탈 때 같이 탄 사람들 중 관광객은 나와 어떤 서양인 커플뿐이었다. 셋다 이게 맞나 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이거 수니온 가냐고 물어보고. 맞다고 해서 잘 타고 갔다. 버스는 중간 중간 더러 정차했다. 타고 내리고. 그렇게 조금 가다가 버스 검표겸 판매하시는 분이 쭉 돌면서 매표도 해주신다. 그 때 나 수니온 가고 왕복으로 사겠다고 하면 된다. 카드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현금결제했다. 그러면 무슨 영수증 주시는데 왕복이니까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버스는 해안가를 쭉 따라 가기에 바깥 구경하기 좋았다. 한 쪽은 바다가 쭉 보이고 다른 한 쪽은 산이 주로 보인다. 각각의 뷰가 다 매력이 있었기에 가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수니온 포세이돈 신전
해가 질 때 쯤 딱 맞춰 도착했다. 같이 내린 사람들은 약 10명정도. 버스 정류장 내리면 금방이었다. 포세이돈 신전 매표소에서 입장료 4유로 내고 들어갔다. 비수기라서 반값이었다. 닫는 시간은 Sun Set. 정확한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신전에 올라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유적 자체가 크지 않고 교외에 있지만 바다도 보고 주변 풍경도 보고 생각보다 갈 만 했다. 신전은 다른 곳들이 그렇듯 반이상 훼손된 모습이긴 했다. 그래도 바다 바로 앞 신전이라니 그 분위기가 좋았다. 해가 이미 지고 있어서 바로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놀았다. 해가 사라지자 바로 관리인이 나가야 한다고 안내했다. 아테네가는 버스 시간까지는 1시간 가까이 남았기에 주변 구경하고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검색하다 여기 아이스초코가 엄청 진하다고 해서 마셔봤는데 초코맛이 진한게 아니라 얼음 없이 걸쭉하게 나와서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그냥 커피 마실걸. 그래도 카페에서 해가 지고 난 후 조명이 켜진 신전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버스는 딱 6시 55분쯤 왔다. 타는 사람이 꽤 있어서 전체자리가 4-5자리 정도 남기고 다 찰 정도였다. 바깥구경을 하려 했지만 너무 깜깜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중간에 검표하시는 분이 또 돌아다니며 티켓을 판매하거나 영수증을 확인했다. 2시간가량 푹 쉬며 아테네에 도착했다. 9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사람도 많고 활기찼다. 그렇게 바빴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다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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